"화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바꿔줄 커뮤니케이션 지침서"
지은이 호쿠다 다케시
화가 나면 화를 내도 괜찮다
화내는 건 득이 되지 않는다?
한 소형찾가 삼거리 왼쪽 교차로에서 도로를 안전하게 달리고 있는 승용차 쪽으로 갑자기 끼어들었다. 직진하던 승용차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급하게 재동을 걸었지만 끼어든 차를 피하지는 못했다. 순간 끼익 하는 브레이크 소리와 함께 차끼리 부딪치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직진하던 승용차의 뒷부분 측면과 옆에서 끼어든 소형차의 범퍼 부분이 접촉하면서 그대로 1mm도 못 가 두 차량 모두 멈추어 섰다.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 모여들었고, 동시에 두 차량의 운전자가 각자의 차에서 내렸다. 이럴 경우, 갑자기 끼어든 소형차의 잘못임이 명백하니 승용차 운전자가 "위험하게 갑자기 끼어들면 어떡합니까? 하고 언성을 높이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승용차 운전자는 온화한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괜찮습니까? 어디 다친 데는 없습니까?"
소형차 운전자인 50대 남성은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그보다 차 뒷부분이 긁힌 것 같던데…‥"
그때 승용차 뒷자석에 타고 있던 중후반 신사가 자못 여유로운 모습으로 내리더니 말을 건넸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쪽 차 범퍼는 괜찮습니까?"
부드러운 언행과 상대를 배려하는 모습에 소형차 운전자는 오히려 송구스러워하는 듯했다.
"죄송합니다. 제 부주의입니다. 수리비는 …‥."
"아닙니다. 쌍방과실로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중후반 신사가 명함을 내밀며 말했다.
"무슨일 있으면 연락 주십시오."
그러자 소형차 운전자도 주머니를 뒤져 명함을 꺼내며 당황한 모습으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저야말로 무슨 일이 있으면…‥"
시종일관 중후반 신사의 페이스였다. 가까이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격한 말다툼을 은근히 기대하거나 상황이 싱겁게 끝나버리자 맥이 빠진 듯했다. 그러고는 인사만 남긴 채 떠나는 신사를 보며 수군거렸다.
"저런 걸 두고 부자는 싸우지 않는다고 하나 봐."
"멋진데? 뭐 하는 사람일까?"
반년 전에 목결한 장면이다. 일을 복잡하게 하지 않고 상대가 고마워하도록 사태를 수습한다. 얼마나 멋지고 세련된 모습인가!
다만 그 자리에 있던 남자가 말한 "부자는 싸우지 않는다"는 한마디가 마음에 걸렸다. 상대의 부주의를 나무라지 않고 오히려 다치지 않았는지 염려한다. 차 수리비도 요구하지 않는다. 여유가 있으니 가능한 일이라 해도 수리비를 자기가 내면서까지 손해를 볼수 있겠느냐고 한다면 글쎄다.
하지만 상대에게 고맙다는 말을 듣고 단시간에 일을 해결했으니 이득이라고 할 수도 있다. 부자는 이것을 정확히 계산한 다음 행동한다. 싸우거나 큰소리를 내지 않는 게 수고도 들지 않고 훨씬 낫다는 것을 알기에 화를 내지 않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손해 보고 싶어 하지 않고, 손해가 되는 일은 그냥 넘어가려 하지 않는다. 부자가 싸우거나 화를 내지 않는 것은 이 원칙에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싸우지 않고, 화내지 않고' 라는 원칙은 부자가 아닌 사람에게는 전혀 해당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보통 사람이 부당한 취급을 당해 화를 내면 "부자는 싸우지 않는다잖아. 화내는 건 전혀 득 될 게 없으니 그만둬" 라고 충고한다. 하지만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부자에게는 싸우지 않고 일을 빨리 마무리하는 게 손해를 덜 보는 일일지 모르지만, 보통 사람들에게는 금전적 손실을 최소화하는 것이 더 나은 일일 수도 있다. 부자에게 통용되는 논리를 모두에게 적용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대부분 사람은 부자가 아니다. 그러니 "부자는 싸우지 않는다" 는 말을 들었다면 맨 먼저 "나는 부자가 아니니까" 라고 확실히 부정해야 한다.
부자 대신 "여유 있는 사람" 이라고 표현을 써가며 "여유 있는 사람은 싸우지 않으니 화내는 건 좋지 않다" 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에 그다음 문제 제기로서, 화내는 것이 왜 좋지 않은지 의심해볼 것을 제안한다.
성실하게 일하는 것을 좋게 본 상사가 계속 일을 시키자 부담을 견디지 못한 부하 직원이 화를 내려는데, 어디선가 난데없이 "참으세요. 화내는 건 전혀 득이 되지 않아요" 라고 귓가에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음, 역시 화를 내서는 안 돼' 라고 화내는 데 제동을 걸어버린다.
이 '마법의 속삭임'처럼 화를 내는 것은 조지 않다고 확신하게 만드는 말이 "부자는 싸우지 않는다" 임을 잊지 말자.
좋은지 나쁜지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어떤 일이든 마찬가지지만 시도해보기까지는 섣불리 판단할 수 없다. 해봐야 결과가 좋을지 나쁠지, 잘될지 안 될지가 명확해진다. 성향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 위험부담이 있는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보다는 안정된 생활을 유지하려는 생각이 강하다.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은 가능한 피하려고 한다. 하기 전에 계획을 세우고 그대로 일을 진행하도록 만반의 준비를 한 다음 행동에 착수한다. 물론 이렇게 하는 것이 안전하고 잘될 확률이 높다. 여기에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당신은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①앞일은 모른다. 따라서 지금 이대로 있는 것이 낫다.
②앞일은 모른다. 그러니 시도해보고 상황을 바꾸어간다.
①을 택한다면 안전해서 좋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
②는 시도해서 실패했을 때 피해가 크므로 택하지 않겠다는 사람도 있지만, 문제점을 방관하지 않고 더 나은 상황으로 만들어가고자 한다면 ②를 택할 것이다. 화내는 것이 좋지 않다는 주장은 화를 내도 일이 잘 풀리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전제되어 있다. 잘 풀릴지 안 풀릴지는 화를 내봐야 할 수 있다. 물론 '화내기' 는 실패의 가능성이 따르는 위험한 커뮤니케이션이다.
"넌 틀렸어."
"그건 이상해."
"고쳐줘."
화를 낼 때 보통 이렇게 몰아세우니 상대는 자기에게 반발한다는 생각에 강한 거부감을 보인다. 그 결과, 바로잡아달라는 안건은 무시되고 상대가 "건방진 녀석, 성가신 녀석" 이라고 미워하거나 멀리한다.
그렇다면 화를 내지 말아야 할까?
말하지 않아도 상대가 알아서 고쳐주겠지 하는 기대로 화내는 것을 포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서도 간과한 게 있다.
첫째, 표현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상대는 알지 못한다. 오히려 알아도 모른 체한다.
둘째,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화내는 것 자체가 나쁘다기보다 화내는 방법에 문제가 있다. 화내는 방법을 궁리하고 개선하면 상대도 받아들일 여지가 충분하다. 문제를 깨닫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화가 날 수밖에 없다. 잘 풀리지 않을지 모른다는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상황을 좋게 하여 불만을 해소하고자 화내는 쪽을 택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런 태도다.
화내는 말의 의미를 착각하지 마라
화애 대한 문제를 거론하면 "그건 꾸짖는 게 아니야?" 하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또 이 둘의 차이가 무엇이냐고 질문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실제로 화내는 것과 꾸짖는 것의 구별이 모호하여, 꾸짖는 정도가 심해지면 화내는 것이 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첫째, 꾸짖는 것은 사람을 키우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상대의 태도, 행동, 사고방식 등의 잘못이나 위반을 지적하여 고치도록 하는게 목적인 커뮤니케이션이다. 사람은 불완전한 존재이며 다분히 약한 면을 갖고 있다. 실패도하고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을 하기도 한다. 더구나 자신의 약점이나 결점을 스스로는 깨닫지 못하는 '난감한 존재' 이기도 하다.
약점이나 결점을 고쳐 자신을 성장시켜가려면 타인의 힘이 필요하다. 이것이 꾸짖는 커뮤니케이션이며 사람을 키우는 데 중요한 역활을 한다.
"너는 틀렸어."
"그런 방식으로는 어림도 없어."
이렇게 꾸짖으면 부정적인 표현이 다르기 때문에 상대의 반발이 강하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행동을 보인다.
● 말대꾸하거나 투덜댄다.
● 뿌루퉁해서 말문을 닫는다
● 회사를 구만두고 싶다는 말을 꺼낸다.
이처럼 꾸짖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에 꾸짖는 쪽 역시 분개하여 위압적이 되기도 한다. 자신이 옳은 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말을 제대로 듣지 않는다며 상대에게 시비조로 호통을 친다.
"말대꾸를 하다니 어디서 배운 버릇이야!"
"뭐야, 그 태도는!"
"싫은 소리 좀 들었다고 회사를 그만둔다니 말이 돼?"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며 상대를 몰아세우는 것은 이미 꾸짖는게 아니다. 그렇다고 화내는 것도 아니다. 그냥 폭발하는 것이다.
둘째, 화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자연스러운 감정으로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꾸짖는 목적이 사람을 키우는 데 있다면, 화내는 목적은 자기답게 살기 위해 부당한 행위, 염치없는 부탁, 약속 불이행, 상처 주는 말 등을 개선하기를 요구하거나 이해를 구하고 사과받는 데 있다.
다른 사람에게 큰소리로 호통을 치거나 감정을 드러내며 비난하는 것은 화내는 게 아니다. 화내는 것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 행위는, 화를 내야 할 때 화가 나는 감정을 상대에게 인식시켜 문제 해결을 도모하는 '정당한 화' 와 구별해야 한다.
꾸짖는 중에 바람직하지 않은 화가 섞여 이 둘의 구별이 모호해지는 경우가 있지만, 꾸짖기와 화내기는 목적이 다른 각각의 커뮤니케이션이다.
화를 참지 못해 마구 내지르는 행동은 꾸짖는 것도 화내는 것도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화를 둘러싼 오해로부터 해방되자. 누구든 화를 내도 좋다. 화를 자신의 진짜 기분을 전하고 마음이 통하는 커뮤니케이션으로 만들자. 그러기 위해서라도 앞뒤 가리지 않고 화낼 게 아니라, '화내는 기술' 을 익혀 화를 내야 할 때 제대로 내보자.
화는 개선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
화의 목적은 공격이 아니다
다짐하는 뜻에서 다시 한 번 말하자면, 화내는 것은 상대와 싸우는 것도 상대에게 시비를 거는 것도 아니다. 화는 강한 에너지를 수반하는 탓에 상대를 공격하고 파괴하는 이미지가 강하여, 자칫 큰소리로 상대를 제압하는 것을 화로 오해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오해이며, 화를 내는 목적은 어디까지나 상황을 개선하는 데 있다. 속이 끓어올라 화를 내는 경우도 있고, 화를 내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일수록 나야지게 해야 한다. 고쳐야 한다는 생각을 내려놓지 말고 계속 밀어붙여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다음 물음부터 시작하자.
사람은 왜 화를 내는가?
현상에 문제를 느끼고 '이상하다','잘못됐다' 고 생각하니까 화가 치미는 것이다. 대학생이 2,3학년 무렵부터 취업활동을 시작해야 하는 현실이 잘못됐다며 화를 내는 친구가 있다.
대학은 학문을 하는 곳이다. 재학 중에 수많은 지식을 흡수하고 학생들끼리 토론하며 높은 이상을 품고 4년이라는 시간을 보낸다. 그래야 졸업하고 취업을 했을 때 넓은 시야에서 일에 몰두할 수 있다. 채용하는 기업도 이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친구는 그렇지 않은 현실에 화가 나서 만나는 사람마다 호소하고, 신문이나 잡지에도 이런 사회 현상은 잘못된 것이며 바로잡아야 한다고 투서를 하고 있다. 상황을 어떻게 파악하는가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대학생이 2학년 무렵부터 취업활동에 전념하는 현상에 대해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수긍하는 사람에게는 문제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초조함도 생기지 않는다.
화는 현상에 대해 '이대로 괜찮은가?" 라는 의문을 갖는 태도에서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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